내가 좋아하는 세명의 작가가 있다. 오스카와일드, 김탁환 그리고 김영하이다. 와일드의 글은 무릎을 탁 칠만큼 센스있는 표현이 많다는 것이 매력이고, 김탁환의 글은 정갈하며 스토리가 흥미진진하다는데 그 묘가 있다. 그리고 김영하의 소설은 약간 환상적이면서 뇌쇄적이다. 김영하의 단편 소설집들이나 장편소설들을 보면 대부분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어느정도 약간씩 넘나들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 현실에서의 탈피가 내가 김영하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김영하의 소설에 열광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김영하의 작품들은 이외수의 소설만큼 비현실적인 환상으로 접해들어가지는 않고, 약간의 몽환적인 느낌만을 주는것들이 많다. 또 흥미로운것은 환상적인 장치를 매번 사용하면서도 소설들의 내용이 매우 다채롭다는데 있다. 보수적인 작가인 김진명의 경우 그 작품의 플롯이 매우 유사하여 한 세네권만 읽어보면 내용이 대충 감이 오는데 ('사건이 터진다 -> 암투를 파헤치는 기자 혹은 변호사 등등의 캐릭터가 있다. -> 남자 주인공은 여자 두명 사이에서 혼자 갈등한다.(그 여자들은 서로 모른다.) -> 뭔가 2% 찝찝한 해피엔딩'), 김영하의 작품들은 매우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앞서 말했듯 나는 김영하의 팬이라 거의 모든 소설 작품을 읽어보았는데, 누군가 나에게 김영하의 작품중 딱 한권만 추천해달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주저없이 '검은꽃'이라는 작품을 추천할 것이다.

  검은꽃은 김영하의 다른 작품들과는 많이 다르다. 김영하 작품들의 큰 특징인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는 상황이 이 소설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검은꽃은 20c 초반 멕시코로 이주노동자 신분으로 건너간 천여명의 조선인들을 마치 르포처럼 추적한다. 에네켄 농장에서 일을 시작했던 멕시코 이주노동자 1세대인 '애니깽'들의 삶을 현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파헤친다. 소설은 다양한 인간군상이 척박한 곳에서 살아남는 과정에서 겪는 희노애락을 매우 적나라하게 드러내는데, 자신의 조국을 잃어 보호해줄수 국가가 없는 소시민들의 삶을 읽다보니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 많았다. 고아, 양반집에서 태어난 신세기적 사상을 지닌 처녀, 주교의 명을 저버린 카톨릭 신부, 박수무당, 좀도둑, 망국의 군인 등 각각의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새로운 곳에서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김영하 특유의 표현력을 통해 살아나, 책을 읽는 독자들이 마치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이 작품이 2004년 동인문학상을 받은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 2004년 동인문학상을 받기 전에 김영하가 이산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을 받았던 전력을 생각해보면, 그에게 주어진 동인문학상이라는 타이틀이 더 대단함을 알 수 있다. 심사진이 몰아주기라는 세간의 평을 감수하고서라도 상을 줄 만큼 뛰어난 작품이란 뜻이니까.

  그런데 왜 하필 제목이 '검은꽃'일까? 소설 내용을 돌이켜보면 검은꽃이라는 표현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던것 같다. 그리고 제목과 관련된 내용상의 암시도 특별히 없었던것 같다. 그냥 책을 읽은 수많은 독자중 한명인 내가 상상해 보건데, 무난한 해석이겠지만, 애니깽 노동자들이 겪는 비극적인 '어둠'의 상황에서도 희망이라는 한줄기 '꽃'이 핀다는 의미로 제목을 지은것 같다. 원래 자연의 꽃들을 살펴보면 검은 꽃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검은색 꽃은 생존 경쟁에서 화려한 색깔의 꽃에 비해 도태되기 때문이다. 꿈과 희망을 안고 온 천여명의 노동자들이 마주한것은 거대한 어둠이었고, 조선에서 어딜가나 있었던 강과 산이 없는 멕시코는 희망의 불모지였다. 그 어떤 희망도 자랄수 없을것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적응해나가고 살아나가면서 한줄기 희망을 꽃피운다는점에서 '검은꽃'이라는 제목을 쓰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본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그 어떠한 고난과 시련이 있는 환경에서도 어쨌든 사람들은 살아간다는것이다. 물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쓰러진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그래도 어쨌든 살아가면서 결국 나중에는 꽃이라는 작지만 위대한 한줄기 희망을 가질수도 있게 되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천여명의 사람들은 오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특수한 훈련을 받은 준비된 사람들이 아닌,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노인도 있었고 어린이도 있었고, 평생 집안일만 해온 여자들도 있었다. 그들이 에네켄 농장에 정착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을 보면서, 사람이란 정말 환경에 잘 적응하고 살아나가는 존재라는 점을 다시한번 느꼈다. 북한에는 꽃제비라는 어린 친구들이 있다. 고아들, 집이 가난한 아이들이 주축이 되어 중국 관광객들에게 인간 광대 노릇을 하면서 유리걸식하며 살아나가는 아이들이다. 그들은 채 열살도 안된 나이에 스스로 자급자족을 하며 살아나간다. 그들 나름의 질서와 규칙을 세운다. 학교에서 배우는것보다 더 빨리 세상의 원리를 익히며, 그 원리에 맞춰서 행동한다. 에네켄 농장 이주민들과 꽃제비 그리고 내 군생활을 회고해보면, 인간은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환경의 동물인것 같다.

  검은꽃의 남자 주인공은 이정이고, 여자 주인공은 연수이다. 고아로 자랐지만 뛰어난 환경적응력을 보이며 어른으로 성장해나가는 이정과 양반 규수집에서 태어났지만 '나는 나를 위해서 산다'는 앞선 시대정신을 지니고 있었던 연수는 서로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고, 그들은 헤어지게 된다. 그때 이정은 약속한다, 연수에게.

 

 '꼭 전해줘. 어디로 가든, 나는 반드시 돌아온다고. 꼭 데리러 오겠다고.'(1부)

 

그리고 그는 그 약속을 지킨다, 수많은 세월이 흐르긴 했었지만.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던, 사랑하는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할 여자를 위해 약속을 지킨 후에 큰 결심을 한다. 세월이 흘러 연수는 이정이 자신의 약속을 지켰음을 알게 된다.

 

'연수는 처음에는 입을 꾹 다물고 얘기를 들었으나 편지를 읽고 나선 울었다. ... 여기 왔었군요. ... 그녀는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리고 다시는 울지 않았다.'(에필로그)

 

나는 이정처럼 반드시 약속을 지킬 것이다. 내가 꿈꾸는 이상향은 예측할수 있는, 믿을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이후에 그와 같은 결단을 내릴수 있을지는 정말 모르겠다. 내가 만약 이정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

Posted by Carry a to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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